+찬미 예수님!

 

오늘 사순 2주일의 테마는 미스테리, “신비입니다.

매년 사순 2주일 복음말씀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에서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에서 예수님을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포하는 바로 이때가 예수님 삶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주님의 변모는 예수님께서 앞으로 겪게 되실 수난과 고통 그리고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며 더 나아가서는 영원히 영광 속에 쌓이신 주님의 모습을 미리 맛보여 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변모는 예수님의 삶에서 여러 장면들과도 교차가 됩니다.

먼저 예수님의 공생활을 알리는 주님의 세례 때에도 하늘이 열리며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로마 병정도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이셨구나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이미지 또한 첫 독서에서의 이사악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점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은 결국 살아 돌아왔지만 정작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피하지 못하셨습니다. 여기서 왜? 라고 물어본다면 오직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은 하느님의 신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문제의 답은 오늘 두번째 독서에서 잠시 엿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아드님을 살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다고 말합니다.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그분의 사랑하는 아드님을 선뜻 내어준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크신 사랑의 증거라고 말하고, 그렇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언제나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시고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우리는 깨끗해지고 다시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시작하고 태어남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도 개선되었으며 희망과 신뢰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어느 것도 우리 개인이나 개인이 저지르는 죄가 아닌 이상 하느님과의 이런 관계를 떨어트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죽으심은 더욱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냥 죽지않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인해 인류가 구원 받을 수는 없었을까요? 왜 우리를 위해 수난과 고통, 그리고 죽으심을 택하신 것일까요?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우리는 이세상 삶을 살아가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간은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늘 좋을 것만 같았던 남편과 아내의 관계,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들과의 관계, 새로 기쁘게 시작한 직장이나 가게, 새로 처음 장만한 집,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며 부푼 희망, 모든 것의 시작은 좋고 희망이 보이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모든 것도 한 순간이라는 것을 특히 우리 어르신들은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가족과의 안좋은 관계, 비지니스를 하면서 겪는 고통, 삶과 육체적 병을 통해 우리는 희망에서 좌절로 이어지는 아픔을 겪고 살아갑니다. 진정한 사랑은 고통과 희생없이는 이룰 수 없다고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고통과 수난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지난 25년간 수 많은 일을 겪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6년 반동안 몸담아 온 메타천 교구 한인 공동체는 완벽한 공동체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디에도 완벽한 공동체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갈등과 고난없이는 더 강하고 결속력이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많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믿음을 갖고 희망을 열어갑니다.

저는 그러한 희망을 여기 계신 여러분들을 보면 느껴집니다.

특히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그런 희망은 배로 느껴집니다.

우리 공동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가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며 우리 공동체를 사랑의 공동체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잠시 고난과 갈등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아들을 바쳐야만 했던 아브라함의 고통,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며 여러분도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겪는 고통이 더 큰 사랑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앞으로 새로 오시는 신부님과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시기 바라며 저 또한 우리 한인 공동체를 위하여 미사 중이나 개인 기도중 늘 기억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