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6) 충실한 평신도들은 여전히 부족하다

교회 안에만 머무는 평신도, 사회 속 신앙 전파 역할엔 미온적
발행일 : 2014-07-27 [제2905호, 11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은 주교와 신부, 부제, 봉헌 생활자와 평신도 모두를 청중으로 하지만, 특별히 그 전반부는 사목자들에게 발해지는 강력한 회심과 변화로의 경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늘날 사목과 사목자들에 대한 신랄하고 비판적인 권고이다. 상대적으로 평신도들의 신앙과 삶에 대해서는 그처럼 비판적인 어조와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조금 불공평해보이기까지 한다. 


아울러 주목할 만한 것은 후반부의 3분의 2 가량이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 즉 신앙과 교회의 가르침이 사회와 갖는 관련성,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 공동선과 평화의 문제, 그리고 신앙과 교회가 사회와 세상과 나누는 대화를 중심적인 주제로 삼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평신도를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 자신’이며,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존재로 규정(교회헌장 31항)한 취지와 실제 현실의 조건들을 고려할 때, 복음화가 갖는 사회적 차원을 충실하게 구현하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평신도의 소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성직자들이 부여받는 역할보다도 오히려 더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교회와 사회 안에서 평신도 현실


비록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날 교회에 제기되는 ‘또 다른 도전들’의 맨 앞에 평신도의 정체성과 소명에 대한 매우 압축적인 언명을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닌 듯하다. 즉,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 102항에서 평신도의 소명과 정체성, 현대 교회와 사회 안에서 평신도의 현실과 사목적 도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별히 교황은 “깊은 공동체 의식을 지니고 사랑 실천과 교리 교육과 신앙 거행의 임무에 매우 충실한 평신도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정체성과 사명에 관한 의식이 점차 증가”되어온 것은 사실이고, 교회가 “많은 평신도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충실한’ 평신도가 부족하고, 평신도의 자기 정체성과 책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모든 곳에서 바람직하게 나타나기만 하는 것은 아님을 교황은 심각하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평신도들은 때로는 교회 안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교회 운영에 참여할 자세가 갖춰져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봉사직에 참여하고 있는 평신도들 역시 교회 안에만 머물 뿐 평신도 본래의 고유한 영역인 세속, 즉 “사회, 정치, 경제 분야에서 그리스도교 가치를 더욱 확산시키는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교황은 지적하고 있다. 비록 힐난조는 아니지만, 교황의 이러한 지적들은 오늘날 평신도들의 복음화 노력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신문이 교황 방한에 즈음해 실시한 설문조사 ‘교회 쇄신, 300인에게 물었다’에서 평신도의 신앙과 삶의 쇄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항은 세 가지였다. 그 중 ‘평신도들의 미성숙하고 개인주의적인 신앙’(19.74%)은 5명 중 1명이 긴급한 쇄신 과제라고 지적했고, 다음이 ‘성과 속을 분리하는 신앙과 삶의 유리’(13.49%)로 나타났다. ‘가정생활과 생명윤리 실천에서의 교회 가르침과의 유리’(7.57%)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지만 이 세 가지 모두가 신앙 의식과 실천의 괴리 문제를 안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지적돼야 할 문제는 교회의 다양한 쇄신 과제들은 한결같이 평신도들이 성숙한 신앙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지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가장 많이 지적된 성직자의 권위주의와 성직중심주의의 문제만 해도 평신도들의 미성숙이 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양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래 교회의 지도력이 고위 성직자나 교구청이 아니라, 본당에서의 왕성한 평신도 활동에서 나올 것이라는 아일랜드 더블린 대교구장 디아뮈드 마틴 대주교의 지적 역시 교회 쇄신에 있어서 평신도의 성숙하고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신앙이 관건임을 염두에 둔 것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 102항에서 현대 교회와 사회 안에서 평신도의 현실과 사목적 도전에 대해 말하며 “깊은 공동체 의식을 지니고 사랑 실천과 교리 교육과 신앙 거행의 임무에 매우 충실한 평신도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신앙은 신앙, 삶은 삶


오늘날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설문조사와 「복음의 기쁨」에서 지적된 것을 바탕으로, 편의상 대략 세 가지로 나눠 살펴본다. 하나는 미성숙한 신앙 행태, 두 번째는 교회 생활 및 신앙 생활에서의 주체적인 참여 부족, 그리고 신앙이 갖는 사회적 차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미성숙한 신앙의 문제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 중의 하나는 신앙과 삶의 괴리 문제이다. 매주일마다 입으로는 믿음을 읊조리고, 신경을 고백하며, 영성체를 하지만, 성당문을 나서 다시 세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신앙은 취미 생활로 돌아간다. 신앙은 신앙이고 속세의 내 삶은 그저 내 개인적인 삶일 뿐이다. 신앙은 더 이상 자신의 삶 전체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세속화가 이미 완전히 진전된 서구에서는 지난 1980년대부터 교회의 생명윤리와 가정생활에 관련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신자들의 신앙 행태를 일러 이른바 ‘카페테리아 가톨리시즘’이라는 이름으로 지칭하기 시작했고, 이는 나중에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신앙적 가르침을 취하는 경향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신앙은 더 이상 삶 전체를 관통하지 않으며, ‘구원’이나 ‘진리’가 아니라, ‘심리적 위안’의 도구로 여겨질 뿐이다. 따라서 반드시 가톨릭 교회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심리적인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아무런 종교적 양심의 거리낌 없이 다른 종교나 신념으로 옮아갈 수 있다. 전적으로 종교와 신앙은 개인적 선택의 몫이며, 종교를 매개로 한 ‘구원’ 역시 개인적 선택의 문제이며 ‘사사’(私事)일 뿐이다. 이미 많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성당과 세속의 유리는 일상화되어 내적 긴장과 갈등의 이유조차 되지 못한다. 


성직중심주의와 미성숙한 평신도


신앙과 삶의 유리는 결국 개인주의적 신앙으로 귀결되고, 신앙의 공동체적, 사회적 차원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마산교구 정하권 몬시뇰은 ‘성숙한 신앙’이라는 제하의 가톨릭신문 연재기사를 통해서 신앙의 사회적 차원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참으로 회심한 신자는 자신의 궁극 목표이신 하느님께 자신의 존재와 활동을 완전히 봉헌한다. … 신앙인은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했다고 수동적으로 살지 않는다. 가야 할 목적지가 분명하고 주변 사물의 의미가 확실해졌으므로 현세적 일이든지 영생에 관한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발전시킨다. … 인생의 궁극 목적은 영원의 세계에 있지만 이 목표에 이르는 길은 현세에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신앙인은 결코 현실 참여를 주저하거나 기피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 102항에서 평신도들의 봉사직 참여가 “교회 안의 임무에 머물고 말아, 복음에 따라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진정한 노력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개탄한 것은 선교와 복음화를 향한 미래 교회의 사명에서 평신도들이 그 방향을 상실하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을 표명한 것과 다르지 않다. 


교황은 심지어 평신도들의 자기 정체성과 소명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교회 안에서 조차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한다. 즉, 교황은 “평신도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평신도를 의사 결정에서 제외시키는 지나친 성직주의로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의견을 말하고 활동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세례와 견진에서 비롯되는 평신도의 책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평신도들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교회 운영에의 참여가 부족한 원인을 성직자들의 권위주의와 성직중심주의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평신도 스스로의 잘못된 인식과 게으르거나 나태한 태도, 신앙과 교회에 대한 이해 부족 역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하권 몬시뇰은 이에 대해 매우 신랄하게 지적한다. 그는 비성사적 교회 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평신도들의 유권적 참여가 당연한 것임을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영위할 때에 지나치게 성직자에게 의존, 결과적으로 성직자 만능주의(clericalism)가 생겨났다. 이는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성직자의 독재적 결정권을 인정함으로써 사목의 비능률과 평신도의 비협조를 초래한다. … 교회와 관련된 모든 일에 있어서 평신도는 성직자에게 무조건 순명해야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고 틀린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성직자는 사목직이 봉사직이라는 교리를 모르는 사람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평신도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와 의무를 모르는 영구한 미성년자이다.”


결국 성직중심주의를 조장하는 책임의 절반은 미성숙한 신앙의식을 지닌 미성년자인 평신도에게로 돌아간다. 정하권 몬시뇰은 “원시종교에서 그들이 숭앙하는 신과 인간을 중개한다고 하는 무당이나 도사를 숭배했듯이 신자들이 성직자를 숭배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이러한 신앙 행태를 ‘무당 숭배의 잔재’라고까지 규정한다. 


평신도, 역할 수행 위한 교육 받아야


교황은 위의 102항에서, 성직자들이 평신도에게 정당한 권리와 책임을 인정할 것과 함께 ‘필요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의 가르침과 신학을 공부하는 일은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것은 ‘성숙한 신앙인’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노력이다. 


가톨릭신문은 이 교회 쇄신 시리즈 기획의 도입 격인 첫 회 ‘한국교회, 쇄신의 전제들’에서 최우선적인 전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신학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배우고 연구하는 일이 긴요함을 지적한 바 있다.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을 적극적이고 투철하게 수용하고 실천하기 위한 노력은 평신도의 소명과 관련한 자기 쇄신의 필수적인 전제이며, 그것이 선행되지 않을 때, 다른 모든 비판들은 그저 불평불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박영호 기자